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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끝나고 우주개발에 소모되는 천문학적인 비용과 효용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대두되었다. 특히, 유인우주왕복선의 잇따른 인명사고(1986년 챌린저호, 2003년 콜롬비아호)를 통해 미국의 우주개발은 예산삭감, 프로그램 중단 등의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한편, 1960년대 이후에 독자적인 우주개발 프로그램을 꾸준히 수행하였던 유럽연합, 중국, 일본, 인도 등이 신흥 우주기술 강국으로 등장하면서, 1990년대 중반부터의 우주개발은 개발 주체의 다변화되고 있는 추세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신흥 우주기술 강국들의 비약적인 성장은 우리나라의 우주기술 개발 필요성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우주개발
미국은 2001년 6월 우주탄생의 비밀을 밝히고, 우주전체의 지도를 작성하기 위한 극초단파 탐사선 SMAP 발사, 2003년 적외선 망원경인 스피처와 갤렉스 우주 망원경 발사, 2004년 1월 쌍둥이 화성탐사로봇 스피릿과 오퍼튜너티 발사, 2006년 명왕성 탐사선 뉴호라이즌호 발사, 그리고 2007년 화성탐사선 피닉스호 발사 등 다양한 분야로의 우주개발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2011년 7월 마지막 비행을 한 우주왕복선 아틀란티스호의 뒤를 이을 차세대 유인 우주왕복선 개발을 계획 중이다. '오리온'이라 명명된 이 차세대 유인 왕복선을 통해 미국은 2015년에 ISS 까지 유인비행을 하고, 2020년 다시한 번 유인 달 탐사를 진행한 후, 2025년 달 유인기지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화성탐사도 진행중인 미국은 본격적인 유인화성탐사비행을 준비하기 위해 2018년 화성 궤도를 도는 화성 탐사 궤도선 발사, 2030년 유인 화성 탐사를 계획하고 있다.

화성탐사로봇 스피릿 / 명왕성탐사선 뉴호라이즈호

러시아의 우주개발
러시아의 우주개발은 구소련 붕괴 후 심각한 경제난으로 항공우주산업으로의 지원 자금이 줄고, 기술적인 문제로 사고가 있다르면서 어려움을 겪어 왔지만, 현재까지 꾸준히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 매년 16기 전후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있고, 2010년에는 17기를 쏘아 올렸으며, 러시아 기업인 ISS-Reschetnev는 15기의 위성을 쏘아 올려 세계 위성제조 시장점유율 1위를 자랑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의 로켓 발사 횟수도 매년 발사횟수 1위를 유지하며 2010년 31회를 발사, 세계 로켓 발사의 42%를 차지하고 있다.

경제적 상황으로 우주개발이 주춤하였던 러시아는 2011년 유리가가린의 세계최초 우주비행 50주년을 맞아 우주탐사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러시아는 2015년까지 국제우주정거장에 러시아 세션을 완성하고, 2020년까지 달에 유인 우주선을 보낼 예정이며, 2030년에는 달 기지를 건설하고, 2040년에 화성에 우주인을 보낼 계획을 하고 있다.
유럽 우주국 (ESA: European Space Agency)의 우주개발
유럽 우주국 (ESA)은 1974년 유럽 17개국의 연합체로 구성된 우주개발 기구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많은 서방의 과학자들이 미국 또는 소련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1950년대 유럽에서는 전후 재건운동이 전개되면서 우주개발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지만, 미국과 소련이라는 초강대국의 우주천문학적 개발비용을 따라가기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따라 유럽국가들이 함께 힘을 모아 분담금을 모으고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하는 방식을 취하게 된 것이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개발이 "유인화"에 주력하였다면 유럽 우주국은 애초부터 "무인화"라는 개념을 가지고 연구개발을 수행하였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도 효율적인 기술축적이 가능했으며, 냉전시대의 정치적 상황을 잘 이용하여 1990년대까지는 NASA, 2000년대 이후부터는 소련과 긴밀한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ESA는 위성뿐만 아니라 발사체에 대한 연구에 큰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연구를 수행하였으며, 1975년 프랑스가 총 개발책임을 맡았던 아리안 로켓을 성공적으로 발사하게 된다. 아리안 로켓의 발사성공은 엄청난 사업-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오면서 1980년에는 세계 최초의 위성발사 대행 회사인 아리안스페이스가 설립되었다. ESA 1990년대부터는 상용 발사체 사업을 통해 1998년부터 2003년까지 113번에 걸친 발사에 성공하면서, 세계 상업발사 시장의 50%를 장악하게 되었다.

한편 유럽에서 유인우주비행의 시작은 1978년 구소련과의 국제우주협력을 통해 소련의 살류트 우주정거장에 탑승하면서 시작되었고, 1983년에는 ESA의 우주실험실이 미국 우주왕복선에 실려 발사되었다. 이후 ESA의 독자적인 유인우주비행 프로그램은 없었지만 러시아의 미르 우주정거장과 미국의 국제우주정거장 계획에 참여함으로써 유인우주비행의 입지를 다져 나갔다.

이 외에도 1974년 유럽의 최초 심우주 탐사선인 '헬리오스' 발사, 1986년 핼리혜성 근접촬영에 성공한 '지오토' 탐사선 발사, 1990년 태양의 극궤도를 도는 최초의 우주선 '율리시즈; 발사, 1997년 토성위성 타이탄의 탐사선 '호이겐스' 발사, 그리고 2005년 금성탐사선 '비너스 익스프레스' 발사등 위성 및 탐사선 개발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ESA는 태양의 활동을 조사할 태양탐사선인 '솔라오비터'를 2017년까지 발사하는 방안을 세우고 있으며, 2019년 우주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를 조사할 우주망원경 '유클리드' 발사, 2025년 화성 유인탐사선 발사 등을 계획하고 있다.

Arian 로켓 시리즈 / Arian 5 로켓 발사장면

일본의 우주개발
태평양전쟁 패전 후, 일본은 항공과 관련된 모든 개발이 7년간 전면 금지되었다. 기술적 암흑기를 통해 일본은 항공기술 개발에서 우주기술 개발로 눈을 돌리게 되면서 1955년 동경대학 생산기술연구소에서 제작한 일본 최초의 '펜슬로켓' 발사가 성공하게 된다. 그 후 관측용으로 개발한 3단식 고체로켓인 '라무다 L-4S형 제 1호기'를 발사하였으나 실패 하였고, 이후에도 세 차례의 발사 실패를 겪은 후에야 1970년 2월 드디어 일본 최초의 인공위성 '오오스미'를 자녁으로 우주궤도에 올려 보내는데 성공하게 된다.

첫 위성인 '오오스미'의 발사로 일본은 미국, 소련, 프랑스에 이어 세계 4번째 위성보유국이 되었으며, '오오스미'가 발사된 이래 현재까지 많은 인공위성이 일본의 자력로켓에 실려 발사되고 있다.

일본은 1975년 N-1 로켓의 발사를 성공으로 지속적인 발사체 개발을 해왔으며, 1998년 8월 순수자체기술로 개발한 실용목적의 로켓인 H2 로켓 4호기가 발사에 성공함으로써 세계 위성 발사 시장에 본격 참여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일본은 H2 로켓을 개량하여 지구 저궤도에 약 10톤 무게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는 대형 로켓인 H2A 로켓을 개발하였고, 2009년 9월 초대형 로켓인 H2B 로켓을 개발하여 발사 성공하게 된다. 일본은 현재 차세대 3단 로켓 개발을 검토 중에 있으며, 2020년께 3단 로켓을 발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로켓 개발과 함께 일본은 인공위성 개발을 지속적으로 해왔으며, 북한 및 중국의 군사적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군사/첩보 위성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2003년 5월 일본의 소행성 탐사 우주선인 '하야부사'가 발사되었으며, 이 우주선은 7년여간의 임무를 마치고 기적적으로 지구로 귀환하였다. 일본은 '하야부사'의 후속 탐사선인 '하야부사 2'를 개발하여 2014년 발사할 계획을 하고 있다.

또한 일본은 2007년 9월 아시아의 첫 번째 달 탐사 위성인 '가구야' 위성을 성공적으로 쏘아 올리며, 달 탐사 계획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은 2013년 달 착륙선에 이어, 2025년까지 달 기지를 선설할 계획이다.

2010년 5월에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금성탐사위성인 '아카쓰키'와 우주범선인 '아카로스'를 성공적으로 발사하였으며, 향후 10년내 직경 50m 짜리 돛을 단 목성 탐사선을 발사할 계획이다.

소행성 암석채취 중인 하야부사 위성 / 첩보위성을 실은 H-2A 로케트 발사장면

중국의 우주개발
중국은 1950년대 소련의 기술을 도입해 우주분야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던 중 1960년대 들어 소련 전문가들의 철수와 미국의 대중국 봉쇄정책등으로 핵개발 및 우주 항공분야에 대한 독자적 개발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1970년 세계 다섯번째로 자국 인공위성인 '등팡홍(東方紅)'을 '창정(長征) 1호'에 탑재, 발사에 성공하였다.

1970년대 초기 중국의 우주개발계획은 문화혁명의 저치적 혼란 속에서 잠시 중단되었다가 1980년대 들어서 다시 우주개발이 재개 되었고, 2003년 10월 세계 세번째로 유인우주선 '선저우 5호'를 발사하게 되면서, 중국은 우주개발 강대국으로 부상하게 된다. 이후 중국은 2005년 8월과 2008년 9월에 '선저우 6호' 와 '선저우 7'호를 연이어 발사하게 된다. 특히 '선저우 7호'에 탑승했던 우주인 '자이즈강' 선장이 세계에서 세번째로 우주유영에 성공함으로써 중국 우주 개발사에 한 획을 그었다.

한편 중국은 2007년 10월 중국 최초의 달 탐사 위성인 '창어 1호'를 발사함으로써 본격적인 달 탐사 경쟁에도 뛰어 들며, 2010년 10월 두번째 달 탐사 위성인 '창어 2호'도 성공적으로 발사하였다.

2011년 9월 29일 중국은 실험용 우주정거장 '톈궁 (天宮) 1호'를 지구 궤도에 성공적으로 올리며 우주개발 기술력을 대대적으로 과시하면서 미국, 러시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우주강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톈궁 1호'의 발사 성공에 따라 중국은 2011년 11월 무인우주선 '선저우 8호'를 발사해 첫 도킹을 시도하고, 이후에는 유인우주선인 '선저우 9호'와 '선저우 10호'를 발사해 도킹할 계획이다. 이를 바탕으로 2016년에 우주인 상주용 우주실험실 모듈을 발사하기 시작해 2020년에 독자적 우주정거장을 운영할 계획이다.

중국은 달 탐사 계획에도 박차를 가하면서 2012년 무인탐사선을 달에 먼저 착륙 시키고, 2017년 달 토양과 암석을 회수하기로 하는 목표아래 유인 달 탐사선 발사계획까지 준비하고 있다. 또한 2011년 말에 러시아와 공동 개발한 첫 화성 탐사선 '잉훠'를 발사할 예정이며, 2013년엔 자국 로켓을 이용해 추가 화성 탐사선을 쏘아 올릴 계획이다.

중국 최초의 우주인 양리웨이 / 중국 달탐사선 창어 2호 개념도

인도의 우주개발
1969년 ISRO (India Space Research Organization)를 설립하여 우주개발에 착수한 인도는 자국내 통신망 확대와 원격탐사 등에 치중하여 위성개발을 수행하였으며, 개발된 위성을 자력으로 발사시키기 위한 로켓 개발에도 노력하였다. 1975년 4월 인도 최초의 인공위성인 '아리아바타'가 발사 되었고, 1980년에 자체 개발 로켓으로 자국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면서 세계 7번째 인공위성 자력발사국가가 되었으며, 이후에도 발사체 개발을 꾸준히 진행하였다.

1992년 인도가 러시아의 발사체 엔진 기술을 구매하기로 하자 미국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2년간 모든 부품에 대한 인도수출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그 뒤로 인도는 미국의 강한 압력과 설득에 시달렸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발사체 개발을 진행하였으며, 그 결과 1996년 3월 자국 발사체인 'PSLV'를 이용해 930kg급 위성을 817km 궤도에 성공적으로 올리게 된다. NASA에는 인도계 연구원이 상당수 근무하고 있을 정도로 인도의 우주기술력은 상당히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역사적으로 오랜 대립관계에 있던 중국의 우주기술 발전에 크게 자극을 받아, 인도 최초 달탐사 위성 찬드리안 1호를 개발, 2008년 10월에 발사함으로써 아시아에서는 일본, 중국에 이어 세번째 달탐사 위성을 발사한 국가가 되었다.

2009년에는 이스라엘에서 구매한 첩보위성인 'RISAT-2'를 발사하였으며, 이 첩보위성을 토대로 자체제작 첩보위성 개발에 착수하였다.

인도는 현재 두번째 달 탐사 위성인 '찬드라얀 2호'를 2013년에 발사할 예정이며,2014년까지 유인 우주선을 발사하고, 2020년에는 달에 우주인을 착륙시킬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또한 인도는 화성탐사도 계획하고 있으며 2013년까지 독자적으로 화성에 무인탐사선을 발사할 계획이다.
이스라엘의 우주개발
1969년 ISRO (India Space Research Organization)를 설립하여 우주개발에 착수한 인도는 자국내 통신망 확대와 원격탐사 등에 치중하여 위성개발을 수행하였으며, 개발된 위성을 자력으로 발사시키기 위한 로켓 개발에도 노력하였다. 1975년 4월 인도 최초의 인공위성인 '아리아바타'가 발사 되었고, 1980년에 자체 개발 로켓으로 자국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면서 세계 7번째 인공위성 자력발사국가가 되었으며, 이후에도 발사체 개발을 꾸준히 진행하였다.

1992년 인도가 러시아의 발사체 엔진 기술을 구매하기로 하자 미국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2년간 모든 부품에 대한 인도수출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그 뒤로 인도는 미국의 강한 압력과 설득에 시달렸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발사체 개발을 진행하였으며, 그 결과 1996년 3월 자국 발사체인 'PSLV'를 이용해 930kg급 위성을 817km 궤도에 성공적으로 올리게 된다. NASA에는 인도계 연구원이 상당수 근무하고 있을 정도로 인도의 우주기술력은 상당히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역사적으로 오랜 대립관계에 있던 중국의 우주기술 발전에 크게 자극을 받아, 인도 최초 달탐사 위성 찬드리안 1호를 개발, 2008년 10월에 발사함으로써 아시아에서는 일본, 중국에 이어 세번째 달탐사 위성을 발사한 국가가 되었다.

2009년에는 이스라엘에서 구매한 첩보위성인 'RISAT-2'를 발사하였으며, 이 첩보위성을 토대로 자체제작 첩보위성 개발에 착수하였다.

인도는 현재 두번째 달 탐사 위성인 '찬드라얀 2호'를 2013년에 발사할 예정이며,2014년까지 유인 우주선을 발사하고, 2020년에는 달에 우주인을 착륙시킬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또한 인도는 화성탐사도 계획하고 있으며 2013년까지 독자적으로 화성에 무인탐사선을 발사할 계획이다.
브라질의 우주개발
남미의 농업부국 브라질은 1961년 INPE(Instituto Nacional de Pesquisas Espaciais)가 설립되면서 본격화 되기 시작하였다. 인공위성을 통한 정확한 기상정보가 필요한 까닭에 우주 엔지니어링 뿐만 아니라 지구관찰, 우주대기과학, 기상분야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브라질의 우주개발 초기에는 미국과 깊은 관계가 있었으나, ISS 사업 등에서 미국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지 못하는 등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어긋나면서 우주개발 분야에 있어서 최근에는 중국과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 중국은 브라질의 우주과학 기초기술의 도움을 받고 있으며 브라질은 중국으로부터 위성발사 및 응용기술을 서로 지원하고 있다. 현재 CBERS (China/Brazil Earth Resources Satellite)-3호가 개발 중에 있다. 브라질은 소형위성체 발사가능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아직 구체적인 성공사례는 없다.

브라질과 중국이 합작해서 만든 CBERS-2 위성

[참고문헌]
http://en.wikipedia.org
http://ko.wikipedia.org
http://www.aric.or.kr/trend/history/list.asp?classify_la=35&classify_sm=46
http://cein21.org/@ict2/kaist/award/1/high/html/%BA%CE%BB%EA%B4%EB%BF%AC%B0%ED/DaeYun/history.htm
http://en.wikipedia.org/wiki/Esa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2665379
http://www.aric.or.kr/trend/history/content.asp?idx=2523
http://www.stepi.re.kr/researchpub/abstract/ABBB-1999-022-009.HTM
http://www.hellodd.com/Kr/DD_News/Article_View.asp?Mark=17978
http://minjang.egloos.com/652624
http://ranier.hq.nasa.gov/telerobotics_page/Photos/FlightPathfinder.jpg